주님이 원하시는 깨어있는자? 가 되어서 축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마태복음 25장 본문의 말씀을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0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0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0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0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0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0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0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0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0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등과 기름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이는 등이란 믿는자의 선행을 의미하고 또한 일반적으로
기름은 성령이라고 여기고들 있습니다.
만약 기름이 성령이라면 8절에서 말하는 성령을 어떻게 나누어 달라고 할 수
있으며
성령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기름]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날 준비말씀]입니다.
어리석은 다섯처녀는 신랑이 오시는 그 때에 놀라서 주님의 날에 대한 지식 얻기를 구했지만
시간의 임박성으로
주님을 맞을 지식을 가르침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앞으로 깨어있는자에 대한 말씀이 기술 될 때마다 주님의 날에 대한 지식, 본문의 기름, 주님을 맞을 지식, 등은 [그날 준비말씀]으로 간단명료하게 명명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준비말씀]이란 그날 예언말씀으로서 대표적인 말씀은 [요한계시록]이고 부수적으로 여러 [그날 예언서들]입니다
그리고 본문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정의들을 예시 하겠습니다.
종말의식, 그날을 사모함, [그날 준비말씀]을 깨달아 알고 지켜 행하여 깨어있음, 그날을 준비하는 기도 등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 핵심적으로 교훈하시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말씀을 듣고 그 말씀[그날 준비말씀]을 지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지켜 깨어 있으라 하는 것은 일반적인 말씀 보다는 특별히 [그날 준비말씀]을 지켜 깨어있어야 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종말의식을 가지고 그날을 사모하는 마음과 의지가 원동력을 발휘하기에 [그날 준비말씀]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날 준비말씀]이 아닌, 그냥 보통의 일반적인 말씀에 나도 순종하는데, 하는 것으로는 깨어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왜 하필 [그날 준비말씀]인 요한계시록 외 그날 예언서들이냐 하면서 나도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만 가지고 깨어있다고 스스로가 여긴다면 본문에 등장하는 미련한 다섯처녀 보다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미련한 다섯처녀가 등불은 가진 상태에서, 기름 곧 [그날 준비말씀]을 준비하지 않았지만, 사실 등불이라고 하는 것도 누구나에게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등불 역시 말씀을 지켜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련한 다섯처녀가 가져간 등불이라는 것도 거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등불 그 의미가 기도하며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 즉 다시 말하면 종말의식을 가지고 그날을 사모하여 그날을 준비하는 기도를 드리며 말씀(그날 준비말씀이 아님)을 지켜 행하고 그날을 준비하고 행하는 전반적인 모든 행위)이기 때문에 누구나가 쉽게 등불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한 다섯처녀와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종말의식을 가지고 그날을 사모하여 그날을 준비하는 기도를 드리며 말씀(그날 준비말씀이 아님)을 지켜 행하고 그날을 준비하고 행하는 전반적인 모든 행위를 한 것임에는 열처녀가 모두 동일합니다.
단지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동일한 행위와 함께 따로 기름[그날 준비말씀]을 준비했다고 본분에서 표현했지만, 기름[그날 준비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날 준비말씀]에서 요구하는 말씀을 충실히 지켜 행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행함(노력과 공을 들임)을 하였겠습니까?
누구나가 나도 말씀을 순종하니까 깨어있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나가 스스로는 말씀에 순종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잘 구분해여 하는데, 단순히 말씀을 지킨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깨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의 OX 보기를 참고하십시요. 그리고 아래의 깨어있다 의미를 설명하는 네 가지의 그날 준비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깨어있는 것으로서 깨어있는자 곧 [그날 준비자]인 것입니다.
반대로 그날을 사모함이 없이 믿고 있으면, 언젠가는 재림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때에 진노의 심판과 함께 늦은비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깨어있어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종말의식이 없으면 사탄에게 공격을 당하여도 모르고 주님께서 요구하신 말씀을 잃고 세상과 짝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막연히 말씀을 지킨다는 생각으로도 깨어있을 수 있다(X) --> 막연히 말씀을 지킨다 하면서도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그날의 징조가 나타날 때 우왕좌왕 하게 되므로 오히려 거짓선지자(이적과 기사를 행할 때)의 먹이가 될 수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그날 준비말씀과 종말의식의 결여임]
종말의식을 무장한 상태가 선두로 향하는 중심이 되어서 목표인 [그날 준비말씀]을 체계적으로 준비해나가야만(완비) 그날의 징조가 나타날 때 담대하게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O)
왜냐하면 깨어있다 라는 의미가 그날을 준비하는 전반적인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서, [그날 준비말씀]을 지키는 행위야말로 깨어있는 것에 포함되는 핵심적인 행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깨어있다 라는 의미란, (1)종말의식을 가지고 (2)그날을 간절히 사모하여 (3)그날을 위한 기도를 하며 말씀(그날 준비말씀 아닌 말씀) 을 지켜 행함 (4)[그날 준비말씀 (요한계시록 외 ...)]을 깊이 깨달아 알고 [그 요구에 충실하기 위해 이행하고 지키는 행함]를 의미하기에, [그날 준비말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그날을 대비하는 중추적인 준비행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서 (1), (2), (3) 은 공통적으로 열처녀 모두 준비한 것이지만, 미련한 다섯처녀가 마지막 (4)번을 준비하지 않음으로, 그날을 대비하는 중추적인 준비행위인 [그날 준비말씀]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은, 일반적인 말씀은 지켰으나 [그날 준비말씀]을 준비하지 않았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깨어있지 못한 경우로 분류된 것입니다.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백퍼 충족해야만 주님이 원하시는 깨어있는 자 곧 제가 명명한 [그날 준비자]가 되는 것입니다.
(추신) 미련한 다섯처녀가 가진 등불도 빛을 발하기에, 그들도 종말의식을 가지고 그날을 사모하여 기도하며 그날 준비말씀이 아닌 말씀은 지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1절 중하반절에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열처녀 모두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 하심으로 미련한 다섯처녀도 신랑을 맞으러 나가기 위한 자기들 나름의 준비를 한 것임을 알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신랑을 맞으러 나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주님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배려하시고 본문의 말씀 속에 기름이라는, 그날 준비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금 현제에 어떠한 믿음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될 수가 없기에 말입니다.
깨어있는자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여 종말의 날을 맞기 위한 기도를 하며 [그날 준비말씀]대로 그날을 준비하는 자, 곧 [그날 준비자]인 것입니다(요한계시록의 인지와 종말의식이 있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 깨어있는자 란 단어상으로도, 이해하고 설명하기도 쉽지 않기에 지금부터는 [그날 준비자]로
명명하겠습니다. 깨어있는자가 그날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그날 준비자로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이 핵심적이고도 필수적인 그날 준비말씀이지만,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이나 설명 등은 오류가 대부분입니다.
주석으로 공부하지 마시고 차라리 기도하면서 응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구절을 인용해서 설명을 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지금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면 너만 알고 너만 옳으냐? 하지 마시고 이 점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반대로 그날을 사모함이 없이 믿고 있으면, 언젠가는 재림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때에 진노의 심판과 함께 늦은비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깨어있어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은 종말의식이 없으면 사탄에게 공격을 당하여도 모르고 주님께서 요구하신 말씀을 잃고 세상과 짝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등불도 기도하며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에는 공통임(종말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여 그날을 준비하는 기도를 드리며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모든 행위임, 단지 그날 준비말씀만 빠져있음)이고 (주의: 그러므로 누구나가 등불을 가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언급하신 주인이 올 때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주인의 종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음으로, 기름이란 주님의 교훈의 말씀을 준비하여 주님의 날을 위한 지식의 저장(그날 준비말씀)이기 때문에 곧 주님의 날에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지식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핵심적인 그날 준비말씀인 요한계시록을 모르거나, 더하거나, 빼거나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의 때에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다는 사실과 인류의 멸망을 외치며 회개할 것을 얼마나 외쳤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던 것처럼,
종말
때에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홍수의 때에 그 많은 사람들이 홍수로 다 멸망되기까지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줄을 깨닫지 못했기에
노아 식구들만 구원 받았던 것처럼,
앞으로 있게 될 창세 이래로 전무후무한 그 환란의 때에도 구원될 자가 적다는 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3장 23절-24절)과,
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마태복음 7장 13절-14절)에서,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셨지만 그 좁은 문을 찾는 이조차도 적은 가운데서,
누가복음에서는 그 적은 좁은 문 찾는자 중에서 좁은 문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들어가는 자가 많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아니 얼마나 적은 수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통과할 것이기에
아에 좁은 문조차 찾지 아니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현재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율법적인 행위구원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이냐 (온전한 행함을 수반하는 살아있는 산 믿음이냐 아니면
행함이 없이 믿기만 하다가 죽은 믿음이냐)를 백보좌 심판 때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
일반적으로, 백보좌 심판은 불신자들을 심판하는 것이라 말하고 여기고 있는데, 불신자들을 심판하는
것이라면 구태여 자기 행위가 기록된 책들과 함께 생명책이 왜 함께 있어야 합니까?
이 말씀의 바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었던
자들 중에서 창세 이래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면 생명으로,
그렇지
못하였다면 둘째 사망 곧 불못으로 처단될 것이기 때문에 생명책이 함께 있는 것이고,
책들에
비해 생명책이 단수인 이유도 그 만큼 구원받는 수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요,
수많은
믿었던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였기에,
자기
행위가 기록된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고
현재의
많은 믿는 자들도 백보좌 심판은 불신자들을 심판하는 것으로 믿고 여길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믿는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깨닫는 자로 하여금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
미리
경고의 예언으로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그 자체가 심판의 기준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요한복음 12장 48절).
믿는다고
했기에 어떻게 믿었는지 (온전한 행함을 수반하는 살아있는 산 믿음이냐 아니면
행함이 없이 믿기만 하다가 죽은 믿음이냐) 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8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마태 7장 21절)에서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란 말씀을 올바로 알고 지켜 행하는 ‘온전한 행함을 수반하는 살아있는 산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라고 하시는 것도 절대로 지켜야 하는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기에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23절)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믿기만 하는 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 2장 14절~17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을 통과하는 모든 과정과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넓은 길을 통과하는 지름길
경로, 곧 첩경대로는 각자가 취사선택하지만 그 결과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있어서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행함이 수반되어야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살아있는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계명과 율례를 올바로 깨달아 알고 지켜 행하며, 말씀대로 따라가야 그 끝이 구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말씀이라는 칼날 위를 지나가는 것으로서,
좌로
우로 한쪽으로 치우치면 떨어져 나갈 것인데,
맹목적으로
지키기 위한 율법주의에 빠지다간 좌로 치우쳐 떨어져버리는 것이고
온전한
행함을 수반해야만 하는 믿음의 정의(뜻)에서 완전히
벗어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이미 얻었다는 쉽고도 편한 지름길 사상을 믿다가는
우로
치우쳐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서, 믿은 후가 믿기 전 보다 더욱 악해졌다는
(베드로후서 2장 21절)의 예에 빠져 떨어져버리는 것입니다.
틀린 예)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계명과 율례의 명령을 교훈 정도로 여기고, 지키지 않아도 이미 받은 구원에는 전혀 영향과 지장이 없다(X)
(베드로후서 2장 21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요한복음 12장 48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지금 이순간부터 여러분들은 매일 매일 짓고 있는 자범죄를 철저히 회개하시고,
더 나아가서는 죽은 양심에서 비롯되는 죽은 행실을 회개만 하실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구하시고 받으시면,
먼저 죽은 양심을 살리시고 새롭게 하시도록 성령님께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능히 죄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히브리서 9장 14절).
단지 아울러 서두에서 이미 말씀드린, 그날 준비말씀(주님의 날을 위해
준비하는 지식의 말씀) 또한 저장해 두셔야만 해야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있어서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 알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행함이 수반되어야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살아있는 믿음 곧 온전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살아있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시고, 창세 이래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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